
insight.co.kr · Feb 20, 2026 · Collected from GDELT
Published: 20260220T021500Z
이슈 공정 외치던 '강골검사' 윤석열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받으며 '내란 우두머리'로 끝난 정치 여정 입력 2026.02.20. 10:58 '강골 검사'로 이름을 알렸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끝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으며 대한민국 헌정사에 오점을 남긴 대통령으로 기록됐습니다. 강직한 법치의 수호자였던 그가 결국 국가 권력을 동원해 내란을 이끈 수괴로 전락했습니다.1994년 검사 생활을 시작한 윤 전 대통령은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윗선의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습니다. 2013년 국정감사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당시 여주지청장) / 뉴스1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강골 검사'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듬해 검찰 인사에서 대구고검으로 좌천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윤 전 대통령은 특검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그는 국정농단 특검을 이끌며 박 전 대통령에게 직권남용 등 혐의로 징역 45년을 구형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후, 윤 전 대통령은 선배 검사들을 제치고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승진했습니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한 적폐 청산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강력한 수사력을 선보였습니다. 2019년 7월에는 직전 문무일 검찰총장보다 사법연수원 5기수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에 파격 발탁되며 검찰 내 최고위직에 올랐습니다.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전 대통령(검찰총장 임명 당시) / 청와대검찰총장 임명 당시 "국민과 함께하는 자세로 힘차게 걸어가는 여러분의 정당한 소신을 끝까지 지켜드릴 것을 약속합니다"라고 했던 윤 전 대통령은 임명 두 달 만에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가족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습니다.이 수사로 인해 같은 해 10월 조 전 장관이 임명 2개월 만에 사퇴하면서, 윤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의 관계는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2020년에는 검찰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월성원전 사건 등 문재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수사를 벌였습니다. 조 전 장관 후임으로 임명된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권 발동, 검찰총장 직무 정지 및 징계 청구 등으로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했습니다.이른바 '추·윤 갈등'은 윤 전 대통령을 정계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이후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이름이 유력 대선 후보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검찰총장 당시) / 뉴스1윤 전 대통령은 정부의 검찰개혁 기조에 맞서 2021년 3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임기를 4개월여 남기고 전격 사퇴했습니다.2021년 6월, 윤 전 대통령은 대선 도전을 공식화했습니다. 한 달 만에 국민의힘 입당을 선언하며 보수 진영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고, 같은 해 11월 홍준표 전 대구시장 등과 경쟁한 끝에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보수 진영에서 대세론이 형성되었지만, 검찰총장 대선 직행 논란과 초보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습니다.김건희 여사 의혹과 '손바닥 왕(王)자' 등 무속 논란,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도 잇따르며 험난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도 갈등을 거듭했으나, 대선 6일을 앞두고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와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며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이를 발판으로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선 후보보다 0.73%포인트(24만7077표) 앞서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공판에서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443일 만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 서울중앙지법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2022년 5월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김건희 여사 리스크, 의대 정원 증원 논란, 채 상병 사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등 잇따른 악재와 미흡한 대응으로 정권 초반부터 국정 동력을 상실했습니다.이준석 전 대표 축출, 김기현 전 대표 불출마 종용,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사퇴 요구 등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의혹도 끊이지 않으며 정치적 논란을 증폭시켰습니다. 2024년 총선에서는 국민의힘이 108석 확보에 그치며 국정 장악력은 한층 약화되었습니다.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야당의 법안 단독 처리와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며 레임덕은 가속화되었습니다.결국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이라는 '악수'(惡手)를 뒀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법치의 수호자임을 자처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 결국에는 충성을 강요하고 부당한 지시를 내리다 법의 심판대에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